[휘경교회]새벽예배 아리마대 사람요셉
찬송가 143장..
삽자가에 달리신 고난의 주 봅니다.
어둔 그늘 덮여도 우리 위해 참으신
그 당하신 고통을 어느 누가 알리요
고통스런 긴시간 인류의 죄지시고
하나님의 어린양 죽으시기 까지도
악의 힘과 싸우며 홀로견디셨도다
아버지여 어찌해 날버리시나이까
하늘 향해 외치고 돌아가신 구주는
하나님의 외아들 대속하신 주로다.
주는 죄가 없어도 만민구원하시려
고통 당해 셨으니 주여심한 고통이
나의 영혼 덮을때 주를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외아들 대속하신 주로다. 주는 죄가 없어도 만민구원하시려
고통당하셨으니 주여 심한 고통이 나의 영혼 더을때. 주를
막 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an honored member of the high council, Joseph from Arimathea (who was waiting for the Kingdom of God to come), gathered his courage and went to Pilate to ask for Jesus` body.
막 15: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지 오래냐 묻고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Pilate couldn`t believe that Jesus was already dead, so he called for the Roman military officer in charge and asked him.
막 15: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빌라도는 백부장에세 알아보고 나서, 시체를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The officer confirmed the fact, and Pilate told Joseph he could have the body.
막 15:46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요셉은 고운 베를 사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입구에 돌을 굴려 막아 놓았다.
Joseph bought a long sheet of linen cloth, and taking Jesus` body down from the cross, he wrapped it in the cloth and laid it in a tomb that had been carved out of the rock. Then he rolled a stone in front of the entrance.
막 15: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어디에 그가 안장되는지를 지켜 보고 있었다.
Mary Magdalene and Mary the mother of Joseph saw where Jesus` body was laid.
유대에세는 안식일이 시작.
일몰과 더불어서 안식일이 시작된다.
시작보다 빨리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이틀 내지는 3일동안 고통을 받다가 죄수들이 숨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데 성 금요일에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목숨을 거두셨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이제 좀 산헤드린 공의회가 다급해졌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한 장본인이였다.
예수님을 유대 유명한 랍비였던 예수님..
예수님 제자들 입창에서
시신이 함부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용감하게 찾아갔다.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요셉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의와 사랑을 담아서 세마포로 정성껏 시신을 에워싸고 장사를 지낸다. 아리마대 요셉은 존경받는 공의회 회원이였다. 그는 바리새인이였다.
산해드린 공의회는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로 구성되어있ㄷ었다.
아리마대 요셉이 아니였으면 예수님의 시신을 예우를 갖추어서 장사를 지내는 것은 어렵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한다. 회칠한 무덤. 겉과속을 다른자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는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때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장사를 지내겠다고 나선 사람은 바리새인 두사람이였다. 아리마대 요셉이였다. 또한사람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익명의 제자로 살았던 인물이였다.
장사하는 현장에 아무도 없었고 제자들도 없었고 군중들도 없었고 환호하던 사람들도 없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꾸중.. 바리새인 두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2사람이 있었다는것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
바리새인을 비난하는 우리는 이들보다 나은 사람들인가.
평소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생각했다.
과연 더 나은것을 무엇일까 바리새인 제자들보다.
죽음의 날 사순절의 마지막 날..
무덤속에 계셨다. 성묘교회가 우뚝 서있어서 죽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죽은자의 죽음이 아니였다. 예수님의 죽음은 산자의 죽음 부활하는 자의 죽음이였다. 그 죽음은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였다.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하는데 이 부활은 영광된 부활로 알려져있죠 상징적인 사건이다. 영광의 사건 기분좋은 사건.. 감사한 사건.. 우리는 부활만 보려는 경향이 만히 있다. 추려내는 경향.. 반드시 죽음이 전제되어야한다. 영광도 마찬가지 존귀함도 마찬가지 그것 역시도 고난이 전제되어야 영광도 얻고 존귀해 지는것입니다. 오늘 사순절의 마지막날 고난주간의 마지막날 죽음의 날을 보면서 부활은 죽어야..
내일의 부활은 오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영광과 존엄과 승리도 마찬가지로 고난을 통과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 은혜..
우리가운데 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비는 고난과 죽음으로부터 영광과 부활로 드러나고 있다. 죽지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고난이 없으면 칭찬받을 수 없다. 우리 주님은 고난을 당하셨구요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 얼마든지 열두군단도 더되는 천군천사를 동원할 수 있었지만 흉학한 무리들을 쓸어버릴수도 있었지만..
성부 하나님의 섭리..
우리의 죄와함께 죽으신 주님을 믿고 고통과 아픔과 죽음을 경험하게 될때 우리 주님과 함께 빛나는 부활 영광의 부활을 경험할 수 있다.
죽음의 날에 우리도 고난에 대해서 하나님을 향한 죽음도 불사하는 순종에 대해서 묵상, 결심하는 가운데서 부활절 아침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영광의 부활.. 멋지게 부활... 위대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