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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7:1-27 강해

잠언 7:1-27 강해
아버지를 통해 받은 명령은 마음에 묶어 매고 어머니를 통해 받은 가르침은 목에 걸라 했다. 그 이유는 음란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이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6:20-35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음란한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 그 여인의 남편에게 잡혀 매를 맞을 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경고했었다. 이제 7장에서는 아버지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며 음란한 여인의 유혹 전략을 소개한다.

I. 지키고 간직하라(1-5)
7:1절도 원어에서는 “내 아들아”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라고 했다. 내 말이란 아버지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가 전해 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이는 2:1절에도 나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라는 말은 그 약속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보초를 서서 감시하라는 뜻이다.

이와 짝을 이루는 말은 내 계명을 간직하라는 말이다. 계명이란 아버지 말씀의 권위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씀의 권위도 역시 아버지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이다. 그 말씀의 권위를 보물처럼 깊이 간직하라는 것이다. 2절에 보면 이 계명을 잘 지키라 했다. 아버지를 통해 받은 계명을 보물처럼 마음 깊숙히 간직해 두었다면 그 다음에는 잘 감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감시하는 목적은 그 계명을 따라 살려는 것이다.

또 2절 뒷부분에서 내 법은 하나님의 법인 토라이다. 이를 눈동자를 지키듯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눈동자는 겉으로 드러난 우리 몸의 기관 중 가장 연약하고 예민하면서 소중한 기관이다. 눈꺼풀은 작은 먼지 하나라도 눈동자에 들어가면 안된다. 만약 들어갔다면 즉시 내 보내기 위해 깜박거린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 안에 다른 이 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그 법의 순수함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눈동자를 지키듯 하나님의 법을 순수하게 간직하라는 것은 끊임없이 잠시도 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라는 것이다.

어떻게 잘 간직하는가? 3절에 보면 하나님의 법인 토라를 네 손가락에 매라 했다. 히브리인들은 말씀이 담긴 작은 통을 가죽 끈으로 팔에 매고 그 끈을 팔과 가운데 손가락에 감았다. 옷을 입어도 항상 보이는 부분은 손인데 그 중에서도 가운데 손가락이 손의 중심에 있기에 가운데 손가락에 감은 것이다. 그것을 보며 항상 하나님의 법을 지켜나가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또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고 했다. 고대 사람들은 중요한 내용을 나무 판에 새겨두고 기억했다. 하나님의 법을 마음의 태블릿에 새겨 두라는 것이다.

손가락에 매고 마음의 판에 새겨 두었다면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4절에 보면 지혜에게는 “너는 내 누이” 라 하라고 했다. 지혜란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지 깨닫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지혜라는 여인을 “내 누이” 이라고 부르라는 말은 넓게 보면 가족으로 맞이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결혼 서약할 때 신랑이 신부를 향해 헌신을 약속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신부로 삼아 항상 가까이 두고 사랑하며 살라는 비유이다. 또 명철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고 하라는 말은 가족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가족으로 삼아 늘 함께 생활하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5절에 보면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라고 했다. 6장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잃고 멸망하게 만들었던 음란한 여자와 7장에 나오는 아들을 지켜줄 하나님의 지혜라는 여인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신부와 가족으로 삼아 살면 멸망하게 하는 음란한 여자에게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II. 음란한 여인의 유혹전략(6-23)
이제 6-23절은 아버지의 말과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빠지게 될 음란한 여인의 유혹 전략을 소개한다. 6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이어진다. 아버지가 전한 말과 명령을 신부와 가족을 삼아야 하는가 하면 이란 뜻이다. 잠언의 기록자는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의 1층에는 창문이 없고 2층에만 창문이 있다. 2층에서 창문 앞에 서 있다가 창살 틈으로 내다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7절에 보면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라고 했다. “지혜 없는 젊은이” 란 “심장이 없는 젊은이” 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심장은 생각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심정이 없는 젊은이는 생각이 없는 젊은이라는 뜻으로 요즘 한국말로 하면 ‘무뇌’ 라는 뜻이다. 생각이 없는 젊은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이 그 마음에 간직되어 있지 않은 젊은이이다. 8절에 보면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라고 했다. 하나님의 지혜가 인도하는 길로만 따라갔어야 했는데 그만 딴 길로 샌 것이다.

하지만 이 뇌가 없는 젊은이는 음행을 하기 위해 음란한 여자를 찾아가는 완전히 타락한 청년은 아니다. 10절에 보면 한 여자가 유혹하기 시작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 젊은이의 잘못은 단지 하나님의 지혜가 인도하는 길을 벗어난 것이다. 9절은 그 때는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고 했다. 이처럼 어두워진 때는 음란한 여자의 도덕적인 어두움을 상징한다. 이 젊은이는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었다.

10절은 원어에서는 “그리고 보라!” 라는 말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이제 한 여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 여자는 기생의 옷을 입었다 했다. 사실 기생의 옷이라기 보다는 창녀의 옷을 입었다고 해야 옳다. 창녀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어두움 가운데 방황하고 있던 젊은이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이 여자는 창녀가 아니었다. 단지 젊은이를 유혹하기 위해 창녀의 옷을 입었을 뿐 사실은 유부녀였다. “간교한 마음”을 직역하면 “마음을 지키고” 라는 뜻이다. 이 젊은이를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희생물로 삼으려는 마음을 숨겨놓고 지켰다는 뜻이다. 이 여자의 남편은 부유한 상인이다.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남편이 없으면 다른 남자들을 찾는 여자이다. 이 여자는 자기 남편이 이 젊은이의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대중들 앞에서 벌거벗기고 죽도록 두들겨 팰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11절은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라고 했다. 떠든다는 말은 천둥치는 소리나 말이 끄는 전차들이 달려오는 소리 같은 시끄러운 소리를 뜻한다. 이는 교양 없이 천박한 언어로 시끄럽게 떠든다는 뜻이다. 또 완악하다는 말은 호세아 4:16에도 나오는데 고집 센 암송아지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이리저리 날뛰는 그림이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반항 끼가 가득한 불량 청소년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모습이다.

따라서 이 여자는 천둥치고 전차가 굴러가듯 시끄럽고 또 고집 센 암송아지처럼 천방지축 날뛴다는 것이다. 이는 천박한 말과 천박한 몸짓을 한다는 뜻이다. 이는 조용하고 품위있는 여인의 모습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모습이다. 이 여자의 발은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 했다. 밤이 되었는데도 밖으로 나가서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함께 잘 남자를 찾는 것이다. 이 여자가 집에 있을 때는 다른 남자 불러들여 잠자리 할 때 뿐이다.

12절은 11절의 떠들며 날뛰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는 먹잇감을 찾는 들짐승들처럼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발견하면 몸을 숨기고 덮칠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자기 집 주변에 머물러 있으면 먹잇감을 찾을 수 없기에 사람이 많은 거리와 광장을 다니며 찾다가 발견하면 숨어서 공격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13절에서는 맹수가 먹잇감을 덮치듯 젊은이에게 갑자기 덮쳐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라는 말은 입을 맞춘 뒤 얼굴을 단단히 붙잡고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에서 말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이는 마치 강간하려는 남자가 여자를 힘으로 꼼짝 못하게 하듯 이 여자는 이 젊은이를 완전히 사로잡은 모습이다.

그렇게 입을 맞추고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에서 속삭인 소리는 14절에서는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다. 원래 화목제를 드리기로 약속했었는데 오늘 그 제물을 드렸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 화목제를 드린 것이 아니라 다산을 기원하는 가나안 사람들의 제의에 따라 가나안 신들에게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다산을 기원하는 제사이기에 이어서 성관계를 갖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가 하는 말은 사실 거짓이다. 자신은 가나안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거짓말 하는 것이다.

15절에서 이 여자는 그래서 이 젊은이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와 애타게 찾다가 이렇게 만났다고 했다. 12절에서는 젊고 잘 생긴 젊은이를 사냥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 젊은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15절에서는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라고 했다. 이는 당신처럼 잘생긴 미남을 찾아 헤메다가 드디어 만났다며 이 젊은이를 비행기에 태우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여인을 간절히 찾으라 했는데 이 음란한 여자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할 대상을 그렇게도 간절히 찾은 것이다.

이제 16절에서 이 여자는 자신의 침실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침대에 요와 애굽의 무늬가 있는 이불을 펴 놓았다 했다. 무늬있는 이라는 말은 보통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입는 염색한 옷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 서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최고 화려한 침구로 장식된 침실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16절에서는 눈으로 그림을 그리게 했다면 이제 17절에서는 그 향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침대는 고대 근동의 부자들이나 소유했던 침대를 말한다. 거기에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다고 했다. 몰약은 아라비아나 아프리카에서 나는 balsam 나무의 진으로 만든 것인데 아주 값비싼 것이다. 또 침향은 동남아시아나 인도 북쪽에서만 나는 것으로 이 여자의 남편이 먼 나라에 가서 사 온 것일 것이다. 계피는 당시 스리랑카와 인도 해안에서만 자라던 것이다. 이 모두 정말 값지고 귀한 것이어서 서민들은 구경도 못하고 왕실이나 최고 부자들만 사용하던 것들이다.

이렇게 화려한 영상에 황홀한 향기까지 묘사한 다음 18절은 “오라” 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라고 했다. 원어에서 흡족하게 사랑한다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사랑의 액체로 가득 채운다는 뜻이다. 5:19절에서는 아내의 품에서 아내의 사랑의 액체를 실컷 마시라고 했는데 이제 이 여자는 자신의 사랑의 액체로 취하도록 가득 채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함으로 희락하자고 했다. 19절에서는 남편이 사업차 멀리 떠났고 보름달이 뜰 때라야 돌아올 것이니 안심하고 즐기자는 것이다. 21절에서는 이렇게 달콤한 말로 유혹하니 뇌가 없는 이 젊은이는 선뜻 그 여자의 뒤를 따라 나섰다고 했다.

III. 음녀의 방 사망의 방(24-27)
원어에서 24절은 “그리고 이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어서 4:1절과 같이 “아들들아!” 라고 부르며 내 말을 들으라고 한다. 또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는 말은 이방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음란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아버지가 전해준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유혹에 넘어가는 첫 단계는 먼저 유혹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음란한 여자의 말 대신에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한 것이다.

25절은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라고 했다. 음녀의 달콤한 유혹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 다음에는 마음이 그 여자의 길로 쏠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 여자가 유혹하는 길로 마음 쏠리지 말라는 것이다. 또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라고 했다. 지혜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가다가 음란한 여자가 유혹하는 곁길로 가는 길로 빠져들지 말라는 것이다.

26절은 원어에서 ‘왜냐하면’ 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에서 상하여 엎드러지게 한다는 말은 원어에서 창에 찔린다는 뜻이다. 성관계 후 벌거벗은 채 창에 찔려 죽어가는 그림이다. 또 이어서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라는 말에서 죽은 자란 잡아 먹으려고 죽인 짐승을 뜻한다. 사람들이 먹으려고 죽인 모습일 수도 있지만 사자와 같은 맹수가 잡아먹으려고 목덜미를 물어 죽인 그림일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여자에게 죽임 당하고 잡아 먹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음란한 여자는 단순히 순진한 젊은이를 유혹하는 끼가 있는 아가씨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전사와 같고 황소까지도 잡아먹는 사자와 같은 무시무시한 여자인 것이다. 전사와 사자의 그림언어는 바빌론 사람들의 여신인 Ishtar이다. Ishtar는 전사이고 또한 그녀의 상징은 사자이기에 26절의 그림언어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수메르인들의 여신인 Inanna도 마찬가지이다. 둘 다 사랑과 전쟁의 여신이다.

27절은 그 여자의 집은 스올의 길이고 사망의 방으로 내려간다 했다. 사망의 방이란 말에서 방이란 잠언 18:8절과 26:22절에서 뱃속 깊은 곳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미쉬나와 탈무드에서는 여자의 생식기를 뜻하는 말로도 쓰였다. 따라서 그 여자의 집이란 말과 사망의 방이란 말은 여자의 가장 은밀한 곳과 그 곳의 깊은 곳과 연결된 말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인 것이다. 이 여자는 아방궁처럼 화려하고 향기나는 방인 것처럼 유혹했지만 어리석은 젊은이가 그 방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창에 찔리고 목덜미를 물려 죽게 되는 것이다. 이 여자의 생식기와 자궁은 사실은 시체가 가득한 전쟁터이고 빠져 나갈 수 없는 요새의 가장 깊은 방인 것이다.

결론 및 적용
아버지의 당부는 아버지가 전해 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약속이 도망가지 못하게 잘 감시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뜻하는 계명은 마음 속 깊은 곳의 안전한 금고에 깊숙히 보관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인 토라는 눈동자처럼 감시하여 아무것도 섞이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간직하기만 해서는 안되고 손가락에 매고 항상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는 음녀에게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무늬만 기독교인이 되는 시작이 이 세가지에 담겨있다.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지 못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권위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고대 근동의 문학작품의 하나이리 뿐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욕심을 섞어 버린다.

음녀란 실제 성적 타락에 빠지게 하는 음란한 여자일 수도 있다. 청년에게 가장 큰 유혹은 성적 유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언 전체에서 사용된 비유에 따르면 음녀란 성적 유혹을 비롯한 다른 모든 탐욕들의 상징으로 쓰인 말로 볼 수 있다.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지혜를 여인으로 비유하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세상 탐욕을 음란한 여인에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울도 로마서 1:26-32절은 성적 탐욕에서 시작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탐욕스러운 자들이 추악한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들의 죄악상을 고발했다. 또 골로새서 3:5절에서도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다. 이러한 탐욕의 시작은 성적 탐욕에서 시작하지만 성적으로 음란한 삶은 추악한 탐욕의 시작일 뿐이고 인간의 탐욕은 마치 프로 게이머처럼 끝이 없이 그 레벨을 높여간다.

믿는 자들이 악한 마음을 가지고 이러한 음녀의 유혹에 의도적으로 빠지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꽉 붙잡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지 않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샛길로 빠지게 되면 먹잇감을 발견한 사자 같은 탐욕에게 먹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음녀의 유혹전략은 눈과 코를 자극하는 말을 귀에 들려주어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음녀가 성적 탐욕과 명예와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이라는 미끼로유혹하는데 모든 탐욕은 결국 성적 탐욕과 연결되어있다. 신실한 정치가들이나 경제인이나 공무원이나 군인이나 연예인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지만 나중에 성공하게 되면 음녀가 인도하는 탐욕을 따라 가다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추락은 성공한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정말 조심하자.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잘 지키고 항상 손가락에 매어 기억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자. 말씀이 마음에서 사라지면 벌거벗은채 창에 찔려 그 창자과 간이 뚫린다. 사나운 사자에게 갈기갈기 찢겨 먹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