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 멜로이가 지은 “지금 두 가지 길을 다 갈수만 있다면” 이라는 책. 인생을 살다 보면 두 가지 길을
다 가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 하나의 길만 가야하는데 늘 후회가 남는다.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가 이 책이 담겨 있다.
A든 B든 선택해야 하는데 이를 빗대어 햄릿 증후군이라 말한다.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
다” 어떤 결단의 상황에서 “예면 예, 아니면 아니요” 해야 하는데
‘글쎄요. --40일 기도를 좀 해 보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예) 어느 직장안에서 성격. 얼굴 매녀 하나도 빠지지 않는 팀장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팀의 리더로써
결정력이 없다. 팀장에게 팀원이 A 디자인으로 할까요? B디자인으로 할까요? 질문을 한다. 팀장은
A “디자인은 색감이 화려해서 고객의 발을 붙잡을 것 같아!” 팀원이 “아 그럼A로 갈까요?”
B “근데 메시지 전달이 잘 될 것 같은데” 팀원이..“그럼 B로 할까요?”
“둘 다 좋은데 자네 마음대로 해” 확실하게 결정해 주지 않으니 팀원은 속이 탄다.
- 본 론 -
우리는 고린도 전서 8장에서 시작된 우상에게 드려진 재물을 먹어야 하는가? 먹어선 안 되는가? 시작된
논쟁의 주제를 묵상하였었다. 오늘 본문은 결론 부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바울은 이 질문의 답을 뛰어 넘는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먹어라. 먹지 말아라” 하나를 결정해 주면 참 쉬울 것 같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에게 율법주의 신앙이 아닌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셨다. 전에 유대인에 속해 있을 때 행동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방식을 소개한다.
우상 재물에 관한 결론을 말하면서 하고 있다.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 결론이다
질문)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먹고 마시는 것이 무엇일까?
- 고린도 지역의 수많은 우상 제물이 있었으나 공통된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갖다 바치라 한다.
(제물로 아이와 젊은 처녀를 바치라 함)
재물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먹지 않아야 한다는 사람이나 겉으로는 신령한 모습으로 이야기
를 하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그 고기 자체에 욕심이 나는 것이다. 좋은 것이니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나니 논쟁을 한다.
바울의 자세는 “나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면 배반할 것 같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
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먹지 않겠다” 이는 먹으라는 말인가? 먹지 말아라는 말인가 모호하지만, 마지막에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니 먹지 않으면 되겠다고 끝내면 좋은데 결론 부분에서 바울이 “너희가 어디 가서
고기를 먹을때 어디에서 나오는 고기인지 그 출처를 모른다면, 우상에게 바쳐진 재물이었느냐 묻지 말고
그냥 먹어라. 먹어도 돼 그런데 고기를 먹을때 누군가 이 고기는 우상에게 드려진 것이라면 먹지 말아라”
다시 원점인 것이다. 결론을 말하면 되는데 왜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가?
질문) 바울은 왜 이렇게 모호한 자세를 취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아니나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니
모호하게 답하는 것일까?
구약의 스가랴서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4. 5. 7. 10월에 4번에 걸쳐 예루
살렘 성벽과 성전이 무너진 것을 기억하며 금식기도가 연례화 하였었다. 그런데 포로귀환을 통해 성전이
회복되었으니 금식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질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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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하나님은 하라. 하지 말라 답을 주시기 보다 7장에 ‘왜 포로로 끌려 갔는지 설명’을 하고 8장에 ‘너희를
불러 회복시켰다’고 말함. 그리고 나서 스가랴 8:1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
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과 절기들
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
질문) 금식을 하라는 소리인가? 말라는 소리인가? 애매모호하다. 아무리 봐도 애매 하다. 마치 바울의 대답
과 똑 같다. 이게 금식하라는 소리인가? 말라는 소리인가?
기독교는 개율 적인 종교가 아니다. 쉬운 말로 말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전부인 종교가 아닌 것이다.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가치는 “자유”이다.
강아지는 땅에 코를 박고 살며, 하늘을 나는 독수리도 땅의 썩은 고기가 있는지 살피면서 날아다닌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으면서 경치가 좋다 하면서 날아다니는 새는 없을 것이다.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자유가 없다. 욕망에 노에에 따라 살아간다. 자유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창조주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받는다. 가장 큰 것은 “자유”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주신 것
은 선택의 자유를 주신 것이다. 선악과가 없다면 우리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다.
선악과가 주어졌기에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고, 의지가 가능하고 자유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
로 안다. 먹는날에는 죽으리라 말씀하셨는데, 결국 살고 죽는 것도 너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소중한 자유를 주셨는지 모른다.
예) 자녀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부모가 가장 흐뭇할 때는 누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때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그 자유함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 그 자유함을 누리라고 계속해서 요구함.
고기를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그런 질문에 고기를 먹어야 해, 먹지 말아야 해 그게 하나
님의 계명이야 어떤 계명을 지키는게 기독교의 핵심이 아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자유를 누리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이게 뭐 자유야? 불편하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자유는 누리는 것이다.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3가지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1. 죄로부터 자유 (정죄로부터 자유)
사단은 너희는 죄인이야 정죄하는데 자유하라
2. 죽음으로부터 자유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부활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크리스찬이다.
3. 율법으로부터 자유이다.
- 성도들은 교회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며 불편해 한다. 그 사람에게는 자유함이 없는 것이다.
- 이것을 해야 하는가? 저것을 해야 하는가? 신앙의 경륜이 높은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이 분도 하나님 앞에서 자유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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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딱히 ‘이것을 해라. 어디로 이사를 하라’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
시는 것은 여러분이 어디를 가서 사는지 마음을 보신다.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정말 믿으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예)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살다가 재산이 늘어나 함께 살수 없게 되자 ‘너가 동쪽으로 가면
나는 서쪽으로 가겠다’ 불안해 하지 않을수 있었던 비결은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복된 땅이 될 줄 믿었던 것이다.” 그러니 별로 답답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보통 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하나님 어떤 길로 가야 할까요? 하나님께 묻는다. 그러나 여러분
의 속을 들여다 보라.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묻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 기도를 하는 자체가 자기 안에 욕심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최상의 고기이다 라는 판단이 있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는 것이다. 이미 자신 마음에 어떤 결정이 생인 것이다.
예) 맘에 드는 형제를 만났는데 형제가 너무 완벽하다. 외모 능력 가정 다 좋다. 그런데 믿지를 않는
다. 목사님 사귈까요 말까요? 질문 자체가 성립되어선 안 된다. 이미 질문을 하는 것은 이미 넘어간
것이다. 어떻게 하는가? 제가 말려도 소용이 없다. 부모 말도 안 듣는데 목사가 말한다고 듣을까?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예) 헨리나우엔은 하버드. 예일대에서 교수로 학문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노년에 신경 쇠약증에 걸리
게 된다. 타인에게 존경받고 명성을 받았지만, 마음의 병, 영혼의 병에 걸림.
비로소 지적 장애우들을 만나 자신이 쌓은 명성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사람
을 만났을 때 자신이 치유됨을 경험했다. “어쩌면 나는 내면의 오랜 방황이 여기서 마쳐 질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대면한 방식과 가장 유사하게 나를 대하고 있기 때문
이다‘ 이 공동체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다.
- 금식을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그랬을 때 하나님의 대답이 “너희가 나를 버리고 죄악 가운데
머물렀지만, 내가 너희를 회복시키기를 원한다. 그래서 너희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한 거야
이제 돌아와 나와 성전안에서 교제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다.”
이런 사랑의 고백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그런 사랑의 고백을 들었는데 금식해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사랑의 마음을 들었는데 고기를 먹어야 하나요? 그것은 답이 아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마음에 자발적인 행동이 있으면 오케이다.
“저도 하나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자발적인 고백이 있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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