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단
거목을 가지고 장작을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낮에는 덥다가 밤에는 춥다. 추위를 면할 수 있다. 안식일에 잔가지를 줍다가 죽임을 당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막상 드리려다 보니까 일부분은 숨겨둔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는 사건. 웃사라는 인물이 법궤를 메고 가는데 덜컹 법궤가 떨어질것 같아서 법궤에 손을 댓는데 즉사함. 오늘 같은 경우에는 어떠한 불을 사용했는지. 참 애매하고 성경에 대한 해석도 애매하나. 여러가지 단서가 있긴한데 통합해 보면 하나님이 명령한 방법이 아닌 자의적인 생ㄱ각을 가지고 어떠한 것을 했을 경우에 징계가 임했다. 안식일에 일을 했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 사용하라는 부를 사용하지 않다가. 신의 밭을 팔아서 죽임을
안타깝다, 무슨 다른 것이 안에 존재했을까?... 다른 불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못하다. 술에 취한채 드리지 않았을까?..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어떠한 연고로 그 불을 사용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한 방법 외에는 부정하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삶이 거룩한 삶이다. 말씀 성경 읽는것 . 그런 방식대로
성경 말씀. 안읽어도 되겟다.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것. 여러 방편의 예배가 존재한다. 집에 앉아서 방송을 듣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모습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 아니다. 하나님앞에 나아와 나의 예물을 드리고 축복을 받는 모습들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정하신 방식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들이 되다 보니까 변질되어지는 모습, 자의적으로 예빼드림과 주일 지킴에 있어서 자의적으로 ㅎ생각해서는 안되겠다.
주일날 어떤 일을 한다 어디를 간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디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김장, 김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성도들이 함께 가서 도와주는 것 옳겠지만 하나님의 예빼자라고 한다면 정한 장소에서 정한 시간에 예배드리는 것은 또 한가지 부분.
어디서든 예빼를 드려도 된다? 무소부재 안계신 곳이 없으니까? 자의적인 해석.
온전히 하나님앞에서 예배드리는 것 지켜야한다. 군대에 가서 예배당에 올수 없다. 해결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예배당에 가서 예배드릴 수 있는 모습 충분히 함꼐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모습 잘 지키지 않고 당연시 여기는 문화 강하게 책망을 하고 싶다가도 넘어간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예배이다. 자의적인 해석, 예배만큼은 하나님앞에 하나님이 정한 방식으로 드려질 수 있도로 주일에 예배에 오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가 왜 자주 내려오느냐 ? 용돈이나 ㅈ루ㅏ고 정한 장소에 와서 예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자녀로 하여금 큰 교훈이 된다. 직접 그러한 모습을 한번 보여주면 주일엔 하나님이 섬기는 교회로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나답 아비후 삽비라 자의적인 생각과 해석으로 어려움을 경험했다. 주일 말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예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