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문교회] 12.21 새벽예배 아론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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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문교회] 12.21 새벽예배 아론의 죽음

아론에 대한 징계 목적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없음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 라고 느낄 수 있음

아론에 대하여 분노를 표현하고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다. 

지팡이를 가지고 와서 반석에게 명하라.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 

지팡이로 반석을 두번이나 내리치는 사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마땅ㅎ다. 

명령대로 이행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감정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분노의 감정이 표출되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른 방법으로 해석하여 이행한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이 바위를 내리치는 행위로 이 바위에서 물이 나온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님이 명령한 방법대로 하지 않은것이 핵심

 모세도 ㅡ랬고 아론도 그랬고 얼마나 오랫동안 연단, 훈련 하나님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수고하였는가 하나님의 음성대로 이행했던 사람들 불평과 원망이 많았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까지 오게 했던 장본인 두 사람이 없었다면 출애굽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아론이 ㅇ벗었따면 성막을 짓고 관리와 모든 운영 절차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 수 있었을까? 인간적인 생각도 들어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책망하듯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쓰시다가 이제는 쓸모없어지니 버리시는 건가 생각이 들만큼 모세와 아론을 바라보면 측은하게 느껴진다. 

 

한국정서는 정이다. 지난날에 함께 해왔던 정 아주 치명적인 잘못이 아니면 넘어가고 덮어주는 것이 한국적인 정서 모세가 가나안에 입성하지 못한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고 서운한 일이 될 수 있다. 지팡이로 반석을 내리치는 행동으로 기적의 근원이 되어지는 듯한 행동 이때는 참으로 중요한 시기 가나안 정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관문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 모세가 보여주는 행동은 하나님 편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되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할 분들이 자기의 감정에 사로잡혀 행하는 일들 아주 면밀히 관리 하셔ㅑ만 했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기ㄹ목 가나안 입성이라는 길목 

 

어느때와 시가 굉장히 중요할 때가 있다. 하나니앞에 순종하는것 때와 시기 적절한 타이밍 해야할 타이밍 하나님앞에 나아와서 소원하고 나의 결심을 다짐해야할 타이밍 연초에 일꾼들을 세움에 있어서 타이밍이 적용되어야한다. 중반이나 후반부에 가서 적용되어진다고 한다면 ㅇ녀초에는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는 직임에 대해서 못한다고 했다가 나는 아무것도 하는게 업네라고 느낀다면 타이밍의 문제다 하나님의 엄하신 사역에 대해 경휼이 여기는 

모세를 가나안땅에 입성시기지 못했던 이유는 모세는 하나님의 그림자였다. 

모세를 바라보면 하나님과 같은 대리만족을 느낌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듯한 존재가 될 수ㅇ도 있었다. 여호와 한분만을 바라보게 하기 이ㅜ해서 가나안 직전까지로 정해놓으심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 모세를 사역에 지점을

 

모세와 아론은 스스로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을 했던 것이 아니였다. 왕구에 있었지만 버림받고 강물에 버려진 운명 바로의 공주ㅇ를 만나 살게 하셨고 말씀을 공급받을 수 있게 딤 자신이 범죄한 사실 분노를 표출하여 사역을 그르쳐썬 ㅇ기억 하나님의 연단을 받고 다시 홍해를 가르는 일들까지 가나안 입성까지 마지막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하지 않고 순수 100프로 명령해야만했다. 모세가 위대하고 대단하다는 사실은 있으나. 모세와아론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모든 영광을 가로챈다면 그 대상을 제거하신다. 주의 일을 하는 목회자가 주의 일을 하는 모든 성도들도 모든 부분을 점검해야만한다. 사역과 봉사와 하나님앞에 열정을 다하면 자신이 굉장히 높아보인다.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고 기여했다는 마음 수용해주지 못하면 . 

내가 쏟은 만큼 인정받고 싶어한다. 다 인정받고싶어한다. 자연스러운 마음 하나님께로의 인정받아야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부질없고 연약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 대하서 인정해 주신다. 하나님 나에게 힘 주셔서 이런 사역을 감당케 하심을 감당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할때 하나님 은혜가 부족한다. 

 

자기들의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지도자였다. 자기의 모든 죄를 사하고 하나님앞에 알현하여 모든 죄를 해결해 주는 대 제사장이였다. 아론의 죽음 앞에..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돌아가셔도 일주일동안 하는 것이 30일동안 애도하고 애곡하는 모습 

 

아론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도 탁월하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징계를 받고 백성들의 징계를 받는 일들이 있었다. 아론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 잘 살펴볼 수 있다. 부족한 그를 기적을 통하여 일들을 감당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일을 허락하셨다. 이른 새벽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신앙의 행위다 공로로 여겨지지 않고 부족한 나를 선택하셔서 나와서 하나님앞에 예배드림에 대한 감사를 표명할때 축복해 주시리라. 나의 분깃을 찾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나를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마음 가지고 집중하시기를. 

 

사역을 하면서 철칙으로 지키는게 뭐냐면 화내지 말자 분노하지 말자 하나님말씀을 사적인 감정을을 담아 투사하지 말자. 목회를 하다보면 서운한 일 마음에 안드는일 한두가지 성도들이 내 마음대로 되어지지 않을때 한두가지 성도들이 바라볼때 맘에 안드는 부분들이 한두가지 우리라는 개념 함께 아파하고 고난 당하고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 생겨나는 것은 우리라는 개념 전우애 동지애 뭔가 끈끈한정들 

 

종강한다. 교육 시키고 받는 입장 슈퍼바이저 준비하시는 분들끼리 동기 

 

매일매일 새로운 교과서 살아있는 인간 문헌을 가지고 분석ㅎ나는 것이 버겁다 그러한 과정들을 소명이라고 여기고 쉬고 여해ㄷ도 가고 등산도 가고 쉼을 얻어야하는데 그래도 항상 소명이다 라고 훈련받는다. 

 

아주 ㅇㅓ려운 과정들을 함께 동행했던 그룹원들이 파트너들이 동지애가 느껴진다.서로 경쟁하고 잘해야지 라는 ㅏ음도 드록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면 이해가 되지 않다라고 할지라도 동지애가 느껴진다. 마지막 교육을 마치면서 서로가 서롱게 선물하는 격려하고 위로받고 빌드업 시키는 일들이 있다. 다로 시작했다가 우리로 끝나는 여정 가운데 많은 배움과 끈끈한 동지애들이 느껴지는 것 같다 

 

많은 교회들 가운데 외형적인 것들에 걷도ㅡㅡㄴ것 표면적인 관계 

가면 쓰고 만났다가 

내면을 보여주면 흠이 디ㅗ고 걸림이 된다. 고백하려고 하지 않는다. 목회자에게 내면을 알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 케어 해 줄수 있다. 상담도 요청하시고 목사를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 애내야한다. 

동지애가 있는 끈끈한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자신의 분노나 서운한 감정이나 마음들이 담아나지 않도록 역사하여 ㅈ시옵소서 힘들고 

 

 

모세와 아론은 아래와 같은 결정적인 불순종으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의 혈기는 분노가 담겨있었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냈으며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민 20:10 모세와 아론은 바위 앞에 온 공동체를 모아 놓았다. 모세가 입을 열었다. ‘이 반항하는 무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내가 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해주랴?’
11 그가 지팡이를 든 손을 쳐들어 바위를 두 번 내리치자 물이 콸콸 솟구쳐 나왔다. 온 무리와 가축들이 바위에서 솟아나오는 물을 마셨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나를 굳건히 믿지 아니하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나의 거룩한 힘을 드러내지 못하였구나. 그러므로 너희는 이 무리를 내가 주겠다고 약속한 그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지 못하리라’
망령된 행위에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온전히 이루셔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하지만 모세의 행동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고 12절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였지만 완전하지 않은 모습이였다. 

 

하지만 역사속에는 하나님께 정말 온전히 순종한 분이 하나 계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눅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이 자신의 죽음 이외에 또다른 그 무엇이 있다면 차라리 그것을 이뤄 달라는 애타는 호소를 하고 계시다. 
하지만 당신의 의지를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는 고백을 통해 전적으로 순종하고 계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의 이 순결한 호소에 ‘부활’로 응답하시고 예수님께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히 5:7, Homer A. Kent Jr.).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내 혈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기를, 전적으로 순종하고 무익한 종임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만나주석
10 반역한 너희여.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시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 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된 말을 했다고 전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 ‘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넘어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다(시 106:33). 따라서 이 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12절).
11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모세는 순간적으로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 두 번 내리쳤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이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10절)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절),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드러냄으로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런 처사라 할 수 있다(시 106:32-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하나의 죄목이었다(12절). 한편 구약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 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 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매’를 맞는 것으로 족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생명수를 얻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반석을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추가적으로 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 가데스에서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바를 온전히 이루셨다.

12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다(28절).

나를 믿지 아니하고.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절) 하나님을 불신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절)을 두고 한 말이다.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것도 불신의 한 단면일 것이다.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백성에게 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의 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다.

너희는 …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있는 영예를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다(28절, 27:12-14, 신 32:48-52). 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 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마 17:3). 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율법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 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롬 3:28). 율법은 단지 우리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초등교사에 불과할 뿐이다(롬 3:20, 갈 3:24, 25).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 구속사의 대선언이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다른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