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문교회] 주일오전예배 엇갈린 하나님의 은혜 창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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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열린문교회

[열린문교회] 주일오전예배 엇갈린 하나님의 은혜 창48:1-6

4명의 아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지붕안에 살아가는데 자식들이 엄마가 다르고 서로간.. 이복형제

갈등.. 

가장 위에 있는 야곱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야곱의 인생은 점차적으로 어려워지고 힘들어질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복 주셔서 회복되어진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 힘들었는지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엇나이다. 

험악 행복.. 

그래도 내가 이것보다는 이러한 기쁜일이 있기 때문에 ..

험악했습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이 많았다...

야곱..

때로는 우리가 상처를 받는다. 야곱도 무수히 많은 상처를 받았다. 

야곱.. 상처를 대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상처를 받았다면 상처와 화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것을 또 상처받게 되는 아킬레스건이 내 삶에 있다 

이 상처를 막아버리고 두터운 갑옷을 입고 드러내지도 않고 상처를 화해하기를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삶의 생생함을

 

생기있게 내 삶이 바뀌어지는 모습..

상상해 보세요 아닌것 처럼.. 

행동 부자연 스럽고 사람과 자신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조금 아프고 챙피스럽고 수치스럽더라도 인생의 생생함이 살아 숨쉬게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와 같은 것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기억의 기념비가 되어서 

선조가 되어지는 축복을 야곱이 누리게 되었다. 

성공을 위해.. 

골목..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용기도 없었다. 

수없이 많은 인생의 그림자 

달고만 다닐 뿐?

순간 순간 내 삶에서 일어나는 현상 작용..

 우연히 일어나는 것? ㄴㄴ

그것에 집중하기를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내 인생에 대해서 철저히 내면을 고백하고 상처와 화해하기를 시도하고 내면의 아픔을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을 만난다. 

사람이 주는 상처는요 금방 견딜 수 있다. 

자기 의지가 강하고 마음의 프레임기 강한 사람 --> 초연하게 넘길 수 있다. 조금 기분이 나쁘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부러 상처를 주시기 위해서 연단을 시작할 때는 엄청난 아픔의 무게로 다가온다. 

자꾸 덮는다 떠오르지 않게하고 생각나지 않게 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말씀으로 나ㄴ를 계속 치잖아요 인정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내 인생의 생동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

계속 상처에 끌려다니는 인생 

우리가 해야할 것은?

내 약점을 인정하는것..

야곱은 한 가정의 한 가문의 큰 어른으로써 축복해주는일..

야곱이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서 눈이 침침해 진다. 

주변의 어떤 사람이 봐도 야곱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와서 살고있는 야곱을 지독히도 사랑했다. 

아버지로부터 아브람 이삭으로 이어지는 축복의 권한이 야곱에서는 요셉으로 이어지지만

우리 자녀들에게도 이어질 것을 요셉은 희망했다. 

 두 아들 므낫세 에브라임.. 야곱앞에 세우게 된다. 

야곱이에요 그러면 오른손이 왼손이 축복할때..? 그러면 여러분은 요셉이라고 치면 므낫세가 장자고 에브라임이 차자이다. 

오른쪽이고 왼쪽이고?

14절의 말씀이 그와같은 말씀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장자의 축복의 대가 이어진다. 

이 요셉의 입장 축복권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그 야곱이 엇갈리게 축복한다. 

어색하다. 어울려요? ㄴ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야곱은 이렇게 축복.. 

연로하셔서 오른손 왼선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구별 못하는구나. 아버지 아버지 오른손이 가르ㅊ키는 아이는 둘째입니다. 듣자마자.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

 

에브라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에브라임에게 ..? 

장자권의 축복을 주었을까? 

깊게 살펴본다면 뭔가 하나를 .. 아버지가 해깔려서 x 야곱은 일부러 .. 왜 이렇게 행동?

야곱이라면 내가 야곱의 입장이라면 그렇게 성경을 읽어보았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요셉 아들이 낳은 두 아들 내 아들이다 라고 말하기 까지 요셉을 너무 사랑했고 나에게 

요셉을 너무 사랑했고 두명의 아들도 너무 사랑했다. 

평생 태어나면서 자신의 인생의 여정이 영화처럼

2명의 손자를 보게되는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둘째로 살았던 서운함.. 어떻게 하면 내가 둘째의 서운함을 이길 수 있을까?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

에브라임 므낫세 를 앉혀놓고.. 야곱.. 떠오르지 않았을까? 아들로써의 서운한 감정.. 저의 생각?

야곱의 마음

 

엇바뀌어진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 ?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자신에게 유익된것을 귀신처럼 안다. 

설명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내가 나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는것을 기대하는 사람. 

내가 원하는 방식 으로 ㄴ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가혹하신 하나님으로 말씀하신다. 

 

환란의 어려움 상처의 순간에 머물게 하시고.. 

화해하게 하고 상처를 보게함으로 인해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고백을 드림으로 

생동함.. 모든 것을 감추고 살아보신다면 구속되어지는 느낌. 세상의 관습 시선에 구속되어지는 막막한 인생..

 지금 야곱은 오른 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왼손으로는 므낫세에게 축복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정해주신것 내가 정하신것 ㄴㄴ 하나님께서 정해주시는것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어지는것 .. 하나도 없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 가신다. 요셉은 힘든 여정을 살았다. 

애굽의 노예로 살다가 총리, 가장 높은 단계.. 나는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거하지 못하고 이방 땅 애굽에 내가 머물러 있다. 자기 자신은 희생한다. 

 

두 아들이 하나님의 장자권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기도를 하는 그 순간 야곱의 고백속에 

 

이는 내 아들이다. 요셉의 아들인데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

축복의 말씀이 될줄로 믿습니다. 

두 아들도 하나님의 두 축복의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ㅇ에브라임 .. 

인생의 강을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기가마긴 카타르시스.. 

속고 속이는 인생 성실하여 많은 인생.. 

아버지 이삭과 같은 실수 눈이 보이지 않아서 축복을 주시ㄴ면 안되는

실수를 이야기하지만 나도 안다. 마지막 판단과 겨ㄹ정이 정확하다고 하는 것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주님의 나라고 가는것?

평생 수고하고 먹고 살다가 죽었더라 ㄴㄴ

축복의 유산을 누리고 평생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았더라. 아멘.

이제 10월 결실의 달. 포도나무 게시판에 걸려있다. ㅣ벚

감사하는 감사의 제목

 

찬양으로 하나되고 고백으로 하나되는 .. 

많은 영혼들이 함꼐 예배드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