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문교회] 요9:1 질주본능을 멈추고 복음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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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열린문교회

[열린문교회] 요9:1 질주본능을 멈추고 복음적인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멈추게 하시는 경우도 있다. 

내 상황을 보아 가기를 원한다면 그때 점검할것은 내안에 복음이 얼마나 자리잡고 있는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는가 어떤 지위에 있는가? 얼마나 복음적인 정신을 가지고 점검할 수 있는가?

어떤것이 복음적이고 복음적이지 않은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법에 말씀드렸던 것은 율법주의는 아니였다. 여러가지 요소들중 율법주의를.. 

완전하고 흠이 없는 삶을 요청한다. 어떠한 잘못도 용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삶을 요구하시는것보다 구별된 삶을 요구하신다. 이렇기에 내가 완전해야겠다. 완벽해야겠다. 율법적이구나 라고 느껴야겠다. 

완전하다고 생각하는것은 그 모습때문에 우리의 모습이 어려워 질 수 있다. 

완전한 삶이 아니라. 

구별된 삶을 요구하신다. 

 

완전한게 있을까요? 

닮고 싶어하는 사람이 완벽하던가? 좀더 가까이 가까이 대면하고 대화하다보면 허점 투성이이다. 실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존경하고자 하는 대상이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모습도 완벽하지 않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완전한게 아니라. 구별된 삶. 

구별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씬다. 

 

완전하게 살라 하는 것은 있을수도될 수도 없다. 요청할 수 있는 것은 구별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본문은 이 말씀을 잘 해석 해 주는 말씀 

예수님이 길을 가실때 맹인 한사람(날때부터 볼 수 없는)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아니다. 아니다. 아버지가 잘못했기에 맹인이 된것이아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에게 보지 못하는 상황을 허락하셨다. 

제자들은 

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연약함을 연약함으로만 보았고.. 죄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연약함이 죄라고 인식한다. 

죄와 연관시킨다. 연약함이 정죄의 대상은 아니다,. 왜 그 사람의 연약함을 보고 마음에 화를 불러 일으킬까? 나에게 손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내게 불편함을 주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삶을 맞이할 수 밖에 없기에 .. 불편한 마음

 

어린 아이는 주어야할 대상이다. 내게 오면 싫어한다. 천진 난만한 표정. 한시간을 놀아달라 싫은 이유? 불편한 것을 참아내기가 어렵다. 어려운 존재. 다 연약한데 어떤사람은 조금 연약 덜 연약 더 연약할 ㅃ/ㅜㄴ이지 어떤 차이는 있을 수 없다. 맹인된 아들을 두었던 부모의 마음은? 장애를 않고 사는 부모는 굉장히 힘들다. 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가 없어서. 

사역을 하면서 많이 만나볼 수 있었따. 회안의 눈물. 굳이 내가 살아보지 않아도 공감되는 아픔.. 맹인을 두어서 가슴 절절히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까? 맹인으로 살아가는 자체만으로도.. 어렵다. 사람들의 편견어린 시선.. 쉽게 정죄하지 말아라. 감소하고 견뎌내면.. 연약함이 연약함으로 보이지 죄로 여겨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고..

제자들입니다. 

바로 저 자신입니다. 라고 이야기해야한다. 바리새인입니다. 제자입니다. 제자들과 달리 전혀 다른 시가으로 보셨다. 

 

연약함이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된다. 동의. !

 

마음이 닫혀있게 하지 않고 마음이 열려있게끔 인도하여 주신다. 

만나는 많은 사람들마다 활짝 열러지는. 복음적인 사고는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자주 열린다. 복음적인 사고 

마음이 옹졸해진다. 그러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느껴야한다. 

 

맹인의 눈을 씻기러 가라. 라고 명령하시면 달리다보면 명령하셔서 그 자에게 그 즉시 기적을 베풀어 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라고 말씀하신다. 열어주는것 복음 적인 사고는 희망을 가지게 하고 꿈꾸게 한다. 

 

과정을 보면

믿느냐. 믿습니다. 화답했다. 

낫기를 원하느냐. 낫기를 원합니다. 

치유의 과정.. 믿음대로 될 지어다. 

그가 원하지 않는데 간절함이 없는데 일방적으로 치유해 주시기 보다는 

네가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주님을 믿습니다. 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허락해주시고 수용하는 작업을 하셨다. 받아들입과 수용하는 과정을 겪어서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수용 되어질때 삶이 될 수 있다. 친척 본토 아비의 집을 떠나.. 아브라함을 향하여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너로 인하여 한 민족을 이루고 .. 꿈과 위대한 계획..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으 떠나라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씬다. 그리고 나서 하는 것은 수용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있다. 

 

아브라함 스스로 떠났기에 주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떠나게 하셨던 하나님꼐 주체가 있다.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내가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워주셨다. 반드시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워지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부모님을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남편의 말 아내의 말.. 사랑하는 격이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욕구로 가득차서 왠만하면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위험하지 않는 곳으로 내 발이 가지 그냥 위험한 곳을 알면서 가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 수용하려면 내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할때가 있따. 그 길을 내가 먼저 가야하겠다 라는 질주본능..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어서서 내가 수용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수용하려고 하는.. 

내가 이루려는 모든 것들이 가득 차있다. 

 

잠시 머무르고 수용하자 내가. 뒤쳐질 것 같아.. 하나님이 원하는 일들을 하게 되면 내 인생이 퇴보될 것같아... 내려놓기 어렵다. 하나님 말씀이 뭐라고 말씀하시던간에 .. 앞으로 질주하여 간다. 

베드로의 모습.. 예수님을 참 많이 만났다. 많은 가르침.. 계속 원점..

 

베드로에게 찾아갔다. 성격이 다혈질 내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물고기도 못잡으니까. 장모가 열병에 걸렸었다. 가족의 생계도 어려워졌다.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돌아간다. 쉽지는 않구나. 또 주님꼐서 찾아오신다. 고민하고 있는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물을 많이 고기를 잡게 된다. 또 어려움을 경험 또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간다. 

 

3번이나 등장한다. 베드로는 수제자이고 멋지긴 한데 도망하고 또 따르다가 도망갔다가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고기를 부어주시고 내 양을 치라. 성장 되어졌음을 예쑤님을 쫓는 삶이 쉬운것은 아니다. 

다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말씀을 수용하기가 어렵다. 

 

부활하신 예수님.. 

진정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고 끝까지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다시 원점으로 가고.. 원점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스톱하고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이.. 주의 이름으로 축복.  

 

복음이 무엇입니까? 죄로 여기지 않고 연약함으로 볼 줄 아는 것이 복음이다. 

이 말씀을 수용하면 우리의 위치가 결정 되어진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의 위치로 세상 사람들을 수용하는 반열에 서게 되어진다. 잘 수용해야한다. 

 

먼 길을 가다보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힘겹게 .. 가고 있는데 수군거린다. 멍청한 사람 같으니라고 타고가면 될텐데.. 아들을 태웠따. 어르신들이 .. 어이 저 싹수 없는 애 보소 아버지가 걸어가고 아들이 당나귀를 타고가 .. 버릇없는 아이라고.. 아버지가 타세요 아버지가 타고 간다. 빨래를 하고 있는 아낙네들이 약하디 약한 어린 아이를 아빠가 타고 가네.. 

한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 두 사람이 다 타고 가고 있었따. 그네를 타고 

동물을 사랑했다. 무식한 사라ㅁ네들 더 당나귀 등은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수용하는 것은 진리 복음.. 성경적인 가치관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수용하는 사람이 된다면 재고 해보아야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생각대로 따라가는것은 .. 

자기 중심적으로 말한다. 성경적인 바른 가치관 성경적인 바른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말씀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내 위치가 세워진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면 세상을 수용하지 못한다. 그 사람을 수용할 줄 아는 안목이 새겨난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서서 종속되지 않고 그를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다. 

 

사람이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은 세상의 풍요 아세라.. 세상의 음욕 암몬.. 세상의 물질을 쫓아갔던 사람들.. 

철저히 금했다.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 

세상을 수용할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꼐서 우리에게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품으라. 

또 하나의 자리로 서게 된다. 복음을 품고 나아가서 구별된 삶을 살면 세상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그러한 사람이 되시기를 어떤 사람이 빵집에 갔다. 보통 빵집은 언제 가야하나? 아침에 가야한다. 막 구운빵을 먹는 맛은 행복함을 준다. 매장이 닫히기 전에 들린다.. 

 

식빵을 하나 두개씩 사간다. 

왜 딱딱하게 굳어버린 빵을 먹을까.. 돈이 없나보다.. 크림 하나 발라 먹을 수 없을까.. 특별한 빵을 만든다. 뻑뻒하다. 빵 안에 크림을 발라놓았다. 아무 소리 않고 팔았다. 그 다음날 아침에 신사가 찾아왔다. 화를 낸다. 그대로 팔지 않고 크림을 발라놓았다. 화를 낸다. 자기 기준으로 선을 행하기 위해서 ... 목판을 설계하는 그림을 그리는 식빵으로 지우는 일을 했던 사람.. 설계또가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마음은 가졌다. 세상적인 기주능로 바라보니 주고자 되서 했던것인데 세상을 끌어않았던.. 자기 위치에서 끌어않았따. 그 사람의 위치에서 원하는것이 무엇인지 . 내 기준대로 했다. 이게 좋은 것 같아라고 생각해서 복음적인 정신은 내가 옳다라고 생각해서 죄가 잇을거다. 

 

이 모든 문제는 핵결될꺼야.. 복음적인 것이 아니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계획을 가지고 수용하고 자기의 것이 될 것 같이 기다리시는 그가 이것을 수용하게끔 인내하시는 주님 하나님 머물러서 그 과정을 지켜 수용하기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진정한 복음이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가치가 된다. 열게끔 한다. 다시 주님의 관점으로 다시 리마인드 하여서 우리의 욕구를 내려놓아야한다. 

질주본능을 멈추고 . 감내해야할것들.. 손해됨이 아니라. 놀라운 계획을 나타낸다는 확신을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