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문교회] 주일오전예배 마태목음 1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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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열린문교회

[열린문교회] 주일오전예배 마태목음 18:28-30

내 스스로 누군가에게 종속당하는 일들을 선택한다. 
거기에서 안정감을 누리려고 한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유가 짐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의존과 종속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과거와는 다르다. 왕정 독재 체제 노동과 억압이 있었던 상황. 
이 시대는 민주주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된 사회. 이토록 모든 대중들이 자유와 쉼과 인권을 경험한지는 몇십년 되지 않았다. 양반들은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천민들은 노동 세금에 속박 억압을 당해야 했다. 
그러한 일을 현대인들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넘치는 자유를 가지고 남을 흉내내고 살고 있다. 자유를 흉내내고 살고 있다. 나와 같이 각박한 삶에서 여행을 갈 수 있다니.. 나도 여행을 가보자 자유를 쫓아 여행을 간다. 나아지는 것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에서의 자유를 선택하는것이 멋져보이고 좋아보였다. 엄청난 많은 어려움 아픔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과연 무엇을 해야할까 라고 하는 답을 찾기도 하지만 답을 가져다 주는 세상의 대안이 없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쉬어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전제조건을 달았다. 내게로 나아오라. 너희는 쉬어라. 그런데 네게로 나아와서 쉬라. 라고 말하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아오라 라는 ㅁ열여에 나아가지 않는다. 왜 하나님 나에게는 쉼이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내가 나아가지 아니하고 쉼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에 내게는 진정한 쉼이 없다. 
내 인생이 어렵죠? 궁핍하죠? 하나님앞으로 나아오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나아가지 않으면서 참다운 쉼을 얻으려고 한다.. 

ex)아머지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출장을 마치고 전화를 한다.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 아버지가 현관에 도착한다. 아들과 딸들은 자기 방 안에서 현관 까지는 2~3m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저 높은 하나님의 처소에서 인간의 공간으로 먼 거리를 여행하며 이 자리에 오셨다. 우리가 나아가는 그 걸음은 한 걸음 밖에 되지 않는다. 한 걸음을 내 딛는 순간 먼 거리를 걸어오신 하나님과의 만남.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네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한걸음만 주께로 향하라. 그 먼거리를 걸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발견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자유와 힘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자기 자신이 당면한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굶주림에 먹이시는 예수 그리스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 정부에 압박 핍박 당하는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주님을 따랐다. 
총독이 있었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고 자유를 갈망하는 유대인들이 반기를 들고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이 많았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려움에서의 쉼 권력의 억압에서부터의 쉼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쉼이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실때 무엇에서부터의 속박 자유를 기대하시고 꿈꾸고 계십니까?

자유와 쉼을 얻기 위해서 단서가 하나 나와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 나 예수를 알 지니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다가가야 그를 불러야먄 너희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쉼을 얻으려면 

 

부리를 

사르트르 니체. 

철학자의 사상에 매료된다. 자기 방식대로 산 사람들은 마땅히 결과에 대해서 책임져야한다. 자유롭게 살고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는 삶. 가라는대로 가지 않고 내가 판단하고 계획하고 나아가는 삶에 대한 . 매력. 내 스스로 획득 할 수 잇는 것. 교회를 다녔고 신앙 생활을 하라고 했던 것에서부터의 자유를 선포하고 싶었다. 교회 나가지 않겠습니다. 라고 선포하고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해방감이 왔다. 아내와 함께 자녀를 낳고 행복할것만같았던 삶에서 엄청난 어려움. 아내가 위암 선고를 받고 의사의 최후 통첩을 받다. 

자신이 책임이 지는 삶에 대해서 참 멋지다. 라는 삶.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질 능력이 없음을 . 깨달았다. 

그 아내를 힘들게해서 암에 걸렸다는 자책감. 이게 자유의 결과인가? 아내는 병들어 죽게 되어버렸다. 어릴때 발로 차버렸던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된다. 말씀 앞에 나아가게 된다.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대신 책임을 저주려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신음하고 계시는 음성을 새벽예배에서 듣게 된다. 제가 어리석었다. 자유를 선언했고 결과물이 나왔지만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그때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네 아내의 암이 나을 것이다. 

암이 나아버렸다. ....

그리스도를 위한 소설. 하나님을 널리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 기독교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했다. 

2장 16절 --> 자유의 종. 자유의 종과 같이 하라. 

자유라는 말과 종이라는 말은 어울릴 수 없다. 하나님앞에 항복하라. 우리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나아와 고백하고 종이라고 인정할때 진정한 자유가 시작될 수 있다. 항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 앞에 나와와 항복하는 것이다. 능력의 ㅣ길이고 자유의 길이다. 예수님의 프로포즈에 응답하여 주님과 함께 가도록 하는 것.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으면 세상에 항복할 수밖에 없다. 돈 권력 나를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거짓 약속을 하는 사람에게 항복 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 항복하겠습니까?

세상에게 항복하겠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절 그러므로 굳건하게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나에게 와서 배우라 하셨는데 조으이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다. 엉뚱한 곳을 쫓지 말라라는 적극적인 대안 다른곳에서 자유를 찾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옆에 잇는 자유이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너희를 결단코 혼자 두지 않으리라. 대신 져주시는 십자가의 멍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느 ㄴ쉽고 내 짐은 가벼우리라. 무거운 십자가의 멍에를 대신 져주셨기에 십자가는 가벼운 겁니다. 써 주고 계시기에 똑같은 멍에가 나와 예쑤님께 얹혀 있는 것 같지만? 겉터 놓여있을뿐.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 십자가의 은혜다. 고통과 질고를 져 주시기 위해 오고 계신다. 엎드리시기를. 

그 능력이 주어질 것이다. 그냥 자유하라 아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채찍을 맞고 안식을 주노니 나와 함께 하지. 

자유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그 자유를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다. 아픔을 주는 그 어떤 사람도 자유를 빼앗 아 갈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 앞에 나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우리를 지켜주신다. 함께 부를 찬양의 가사가. 

 

내 아머지 그 품안에서 내 영혼을 안전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세상이 주는 안락함.. 

 

주님앞에 안락이 있다. 

 그 시간과 열정을 주님에게 쏟을 수 있다.

 

거기에는 진정한 자유도 쉼도 없다.